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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삭 장편 소설] 감찰무녀전 - 신기없는 무녀와 귀신보는 유생의 괴력난신 수사활극 . 역사추리 소설 강력 추천!

한국 도서

by SOON PARK 2024. 12. 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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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 (設子)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한 여아 (女兒)가 있었습니다.
깊고도 깊은 구중궁궐에서 불을 때던 아이였지요. 아이는 숯검정으로 염이라도 한 듯 항상 꾀죄죄했습니다.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았답니다.ㅋ
하루는 대궐에 작은 불이 났습니다. 그것도 대군의 침실에서요.
침실 등불을 관리하던 복이처(내전 침실의 등불 켜기, 불 때기등 여러 잡일을 맡은 곳) 나인이 목숨을 잃을 신세가 되었지요. 아이는 그 나인이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 중 한 명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잘못한 적이 있다고 하여 목숨을 빼앗겨도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날 밤 아이는 복이처 나인을 심문하던 상궁들을 찾아갔습니다.  감찰상궁과 궁정상궁이었지요. 날붙이 같은 눈빛으로 궁인들의 얼굴에서 핏기를 앗아가곤 해 인두겁을 쓴 호랑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었답니다. 그러나 아이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거든요. 

아이는 말없이 향낭 하나를 건넸습니다. 검게 그을린, 아주 화려한 수가 놓인 비단 향낭이었지요                - 07~08p -

 

원한이 관 안에 잠든 이의 혼백을 깨우고, 깨어난 혼백이 여귀가 되어 무덤 밖으로 나올 거라고, 손이 되어 자기들을 찾아올거라고 믿었다.

그게 손각시였다. 손이 되어 찾아오는 각시.
혼인하지 않았기에 손각시는 종속된 가문이 없었고, 어디든 찾아 갈 수있었다. 또한 의례를 통해 길들여진 적도 없었다. 그 말은 손각시를 통제할 수 있는 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생전에 약자였을 이가, 어쩌면 산 자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한 걸지도 모르는 이가, 누구를 억누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인세로 돌아온다. 
자신을 짓밟았던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 51p -

 

"하지만 이대로 눈을 감고 보지 못한 척한다면, 내가 남을 밟지는 않았지만, 남이 밟히는 것을 방관하였다면, 결국에는 같은 이가 되어버리는 것 아닙니까?"

무산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 아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것이 내 죄가 아닐지라도 못 듣고 못 본 척한다면, 결국에는 내 죄가 되는 거라고. 그러니 너처럼 다 알고도 모른체 하면서 방관하지는 않을 거라고.
반드시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 모두에게 알릴 거라고.
그러다 그 아이가 어찌 되었던가. 결국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무산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 200p -

 

"하지만 그들은 두박신의 득과 실을 구분할 수없다. 진짜로 드러나는 것이 낫다면 그것이 가짜여도 진짜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가짜로 드러나는 게 낫다면 그것은 진짜여도 가짜가 되어야 한다. 무엇이 대국에 좋을지를 구분해 낼 수 있어야.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두박신이라는 괴력난신이 득일지 실일지를 알아내라고."

"......"

"그들은 곧아서 구부릴 줄을 모르지만, 너는 다르지. 그래......너는 달라. 너는 대나무를 닮은 아이니까. 휘어야 할 때 기꺼이 휘는 아이지. 그러니 잘 판단해 행동하거라. 궐에서 나간다고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속세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는 이들도 결국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다면, 어떻게든 무언가를 움켜주거라. 그것이 진성이든 국무든, 무엇이든 되어서 너 자신을 지켜. 이제는 나도...... 더는 너를 지켜줄 수 없다."        
순심은 허리를 곧게 펴며 걸음을 옮겼다.       - 309p -

 

<책을 읽고> 아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글들을 잘 쓰시는 작가분들이 많았다니 뒤늦게 독서에 빠진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이시라는 김이삭 작가님의 첫 소설책은 아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꼭 찾아 읽어 볼 것이다. 작가의 철저한 고증에 의해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서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를 접하게 되어 더 뜻이 깊은 소설책이다. 시대적 배경은 신분의 차이를 두고 있지만 인간의 삶과 죽음은 모두 같은 게 아닐까? 신분을 넘어 같은 사람이기에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행위가 진정으로 와닿았다. 

[ 감찰무녀 전]은 [한성부, 달 밝은 밤에] 스핀오프 작품이라고 한다. 번외 편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책을 읽으며 꼭! 드라마로 제작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주인공 무산역도 나름 생각해 보고 ^^  <옷소매 붉은 끝동>의 여주인공 이세영 씨가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나름 가상 캐스팅도 해보는 즐거움을 주는 소설책이다. 

궁에서 나와 거짓 무녀로 살던 무산이 그의 벗인 앞을 못보는 판수 돌멩이와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신기까지 가지고 있는  설랑. 또 그들을 돕고 같이 의문의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관료들 까지. 각자의 개성들이  뚜렷해 이야기의 재미를 더 해주고 있다. 한 번씩 나오는 유머스러운 글발도 미소를 자아내게 만들며 단 숨에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읽어 내려가게 된다. 잔잔하게 사건을 추리해 나가면서 사건을 밝혀내는 스토리는 복잡 미묘한 추리극이 아니라 인간적인 마음을 보듬어 주는 면도 좋았다. 오랜만에 또 좋은 책을 찾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계속  시리즈로 나오면 하는 바람이 있다. 

참!! 이 소설책을 읽으며 힘들었던 점이 단 하나 있긴 하다 ㅎㅎ. 물론 내 짧은 국어 한자 실력이 문제이겠지만 모르는 단어들이 너무 많아서  어학사전을 옆에 끼고 단어를 찾아가며 읽어야 했다는 것!  내가 이렇게 국어 실력이 없었다니 ㅜㅜ  첨 듣는 단어들이 어찌나 많던지 ㅎㅎㅎㅎ 글의 흐름을 이해하려면 단어들을 검색해야만 했다는 ^^:: 슬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전하며 나름 공부도 되어 좋았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적어본다. 

(* 냅뜰성 : 명랑하고 활발하여 나서기를 주저하거나 수줍어하지 않는 성질. 무슨 일에나 나서서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성질.

*개밥바라기 :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을 이르는 말.

*대거리 : 상대방 맞서서 대듦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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