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장편 소설] 새의 선물 - "삶이 내게 할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 자크 프레베르, [ 새의 선물] 전문 /프롤로그/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1969년 겨울, 나는 조그만 좌식 책상 앞에 앉아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목록을 지우고 있었다. 동정심, 선과 악,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 마침내 목록을 다 지운 나는 내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연필 쥔 자국이 깊게 파인 것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인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뭔가를 쓰다가 이따금 연필을 내려놓고 가운뎃손가락 마디의 옹이를 한참 내려다보곤 한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한국 도서
2024. 11. 5. 12:19